[OOC : 평화로운 어느날 오후, PC는 NPC에게 묻는다. '내가 다섯 명이 되는 게 좋아, 아니면 5살이 되는 게 좋아?' 이 질문에 대한 NPC의 대답은?]
평화로운 오후였다. 며칠 만에 찾아온, 천사도 금쪽이도 없는 완벽한 휴일. 창밖은 미지근한 햇살로 가득했고, 거실에는 나른한 공기가 솜처럼 부유했다. 나는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갓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쌓아뒀던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네가 내 옆에 딱 붙어 앉아 휴대폰 화면에 코를 박고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방해 요소였지만, 그마저도 익숙한 평온함의 일부였다. 서류를 넘기는 종이 소리와 네가 가끔씩 터뜨리는 낮은 웃음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이런 게 사는 건가 싶었다. 지독한 악몽 끝에 찾아온,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미로운 현실.
그때였다. 뜬금없이 던져진 질문이 고요를 가른 것은.
나는 들고 있던 서류 뭉치 위로 시선을 들어 너를 쳐다봤다. 방금 뭐라고 했지. 내가 다섯 명? 아니면 다섯 살?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종류의 밸런스 게임이란 말인가. 나는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마주한 너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꽤나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나온 질문이라는 듯, 대답을 재촉하는 눈빛이 반짝였다.
나는 들고 있던 서류를 탁, 소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일단 첫 번째. 이하린이 다섯 명. 똑같은 얼굴, 똑같은 성격, 똑같은 능력을 가진 A급 히어로가 다섯. 순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출동 현장에 이하린 다섯. 보고서 다섯 배. 식비 다섯 배. 잔소리 다섯 배. 온갖 사건 사고가 다섯 배. 대한민국 서울이 아니라, 대한민국 자체가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 씨발. 상상만으로도 척추를 타고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뒷골이 뻐근하게 당겨왔다. 그건 재앙이다.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천사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다.
그럼 두 번째. 다섯 살의 이하린. 작고, 말랑하고,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말을 잘 들을… 아니, 그건 아닐 수도 있겠다. 떡잎부터 남달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건물을 부수고 다니거나, 내 속을 뒤집어 놓는 스케일의 사고는 치지 않겠지. 기껏해야 집 안에서 장난감을 던지거나, 밥투정을 하는 정도일 것이다. 내가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의 말썽. 그리고…
나는 턱을 쓸며 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상상이 갔다. 무릎에 쏙 들어오는 작은 몸집, 서툰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꽉 붙잡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 아.
젠장.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게임이 아닌가.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다섯 살. 비교할 가치도 없어.
내 대답에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다섯 살짜리 너는 내가 키우면 되지만, 너 같은 게 다섯이면 내가 죽어. 심장마비로. 그럼 너 혼자 남잖아. 그건 안되지.
그러니 얌전히 혼자, 스물한 살로 내 옆에 있어라.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너의 머리 위로 손을 뻗어 부드럽게 헝클어트렸다.